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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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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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옳다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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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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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선교신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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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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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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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만의 틀을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성격이나 교양, 또는 양심까지도 ‘이것만은 내가 옳다’고 하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면 외향적인 성격의 사람이 내성적인 사람을 보며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답답한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성적인 사람이 외향적인 사람을 보면 어떠할까요? ‘왜 저 사람은 저렇게 거칠까, 상대를 좀 생각해 줘야지’라고 생각하는가 하면 오히려 ‘나도 저 사람과 같이 외향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따라서 자기 성격이 옳다 하며 자기 성격에 맞지 않는다고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틀이라는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두 남녀가 결혼을 해서 함께 살다 보면 사소한 것을 가지고 다투는 경우가 생기게 되지요. 가령 남편은 아침밥을 든든히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아내는 빵으로 간단히 먹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다면 아침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를 놓고 둘 사이에 부딪침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들이 왜 생기는 것일까요? 바로 지금까지 성장해 오면서 자기 몸에 밴 습관이라고 하는 틀이 서로 간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직장에서 일을 할 때 보면 남의 도움 없이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만 하려는 사람이 있는 것을 봅니다. 자신이 뛰어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어려운 환경 가운데 성장하다 보니 남을 의지하기보다는 혼자 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런 사람이 공동체 생활을 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과 잘 융화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본인은 그런 의도가 아니라 해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혹여 타인에게 ‘저 사람은 교만해’라든가, 아니면 ‘저 사람은 이기주의적이야’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방식만을 계속 고집해 나간다면 결과적으로 이것도 하나의 틀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로 비추어 보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틀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고 진리에 맞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자신의 틀을 발견하고 하나하나 깨뜨려가는 과정이 있기 마련이지요. 이때 내가 옳다고 하는 틀을 고집하는 만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고후 10:5). 자기 생각과 자기 보기에 옳은 대로 행하게 되니 성령의 주관을 좇을 수 없고 결국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에서도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틀에 맞는 것은 받아들이고 틀에 맞지 않는 것은 배척하는 것을 봅니다.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는 사람이나 일에 대해서는 포용하고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저 사람은 왜 그럴까, 저것은 잘못된 것인데’라는 생각이 앞서는 것이지요. 이러한 예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교양에 맞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상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국 판단과 정죄를 낳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상대와 부딪침이 생길 수 있으며, 하나 될 수도 없으니 어떤 일을 이룸에 있어 서로 협력하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2:4-5에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하신 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임을 알아 서로 이해하고 포용함으로 아름다운 주의 일을 도모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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